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늘고 푸른 선 (문단 편집) == 여담 == 랜달 애덤스는 석방 이후, 돌연 에롤 모리스를 고소했다.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 에롤 모리스와 랜달 애덤스가 사인한 계약서가 화근이 됐다. 에롤 모리스가 랜달 애덤스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10달러[* 한화로 만원 정도.], '''상업영화'''를 만든다면 6만 달러[* 한화로 6천만원 정도.]와 수익의 2%를 랜달 애덤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므로, 에롤 모리스는 당연히 랜달 애덤스에게 단돈 10달러만 줬다. 그러나 랜달 애덤스는 '''가늘고 푸른 선'''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상업영화라고 주장하며, 6만 달러를 지급받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애덤스는 이 영화가 상업영화관에서 상영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에롤 모리스 감독은 본인은 애덤스의 삶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며, 이 영화로 수익을 보기는 커녕 10만 달러의 빚을 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북미에서 120만 달러 흥행 수익을 벌어들였기에 애덤스 변호인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줄다리기 끝에, 1989년 8월 5일에 합의가 성사됐다. 에롤 모리스가 랜달 애덤스를 소재로 한 책 또는 상업적 영화에 대한 전권을 가지는 동시에, 에롤 모리스가 랜달 애덤스에게 60,000달러를 지불한다는 내용. --에롤 모리스는 그럼 이 영화 때문에 총 160,000달러의 빚이 생겼군-- [[http://www.nytimes.com/1989/08/06/us/freed-inmate-settles-suit-with-producer-over-rights-to-story.html|기사]] '''가늘고 푸른 선'''이 상영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고, 랜달 애덤스는 평생 감옥에서 콩밥이나 먹어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인 에롤 모리스를 상대로 소송을 건 애덤스는 배은망덕하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소리 아니냐는 것. 그러나 계약은 계약이라는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편 애덤스는 이 영화가 상업영화관에서 개봉됐기 때문에 상업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업영화관에 개봉될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 냈기 때문에 본인이 무죄 방면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아니냐는 재반론도 가능하다. --일개 다큐로 묻혔으면 석방이나 될 수 있었을까-- 별안간 없는 죄를 덤터기 쓰고 기나간 투옥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의 정신이 황폐화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에 따른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애덤스는 텍사스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2년이 넘는 억울한 복역 생활에 대하여 1푼도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내고 사형반대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99년에 결혼도 했으나 이혼했다. 그러다가 2010년 10월 30일, 랜달 애덤스는 6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인은 뇌종양.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